-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경남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서 전개된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영산읍의 만세시위운동은 이곳의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김추은(金秋銀), 구중회(具中會), 김금영 등은 의거일을 3월 13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대한독립 만세'라고 크게 쓴 기도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3일 김금영을 비롯한 23명의 천도교인들은 영산 앞 남산봉에 집결하여 '이 운동에서 일보라도 퇴각하는 자는 다른 단원으로부터 생명을 빼앗긴다'라는 비장한 결의로 결사단원 맹세서에 각기 서명하였다.
처음 이들의 계획은 남산에서 개춘회(開春會)라는 모임을 열어 군중을 규합할 생각이었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경의 감시로 인해 하산하여 제지하는 일경과 충돌하였다. 이에 많은 군중들이 가세하여 시위대는 4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주동 인사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북과 징을 울리며 "무쇠팔뚝 돌주먹 소년남아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 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나라에 애국의 정신이 다달았네" 라는 소년행진가를 부르며 영산읍으로 돌입하였다. 6∼700명으로 늘어난 군중들은 영산읍을 누비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대의 일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일본인 상점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그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으나 일경이 김추은 등의 주모자를 체포하여 창녕경찰서에 수감하자 남은 주모자들은 창녕경찰서를 습격하여 구속 동지를 탈환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다시 남산봉에 모여 많은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영산읍을 거쳐 창녕읍으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계성교(桂城橋) 근처에서 저지하는 일경과 일대 육박전을 전개한 후 시위대를 나누어 창녕경찰서로 쇄도하였으나 총검을 앞세운 일경에 의해 주동인사 전원이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9년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犯罪人名簿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29∼23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27∼122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