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곽천응 등 기독교장로교측 인사들은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2월 26일 평양의 6개 장로파 교회에 통지서를 보내, 고종의 봉도식(奉悼式)을 거행하는 숭덕학교에서 독립선언식을 갖기로 했음을 알렸다. 장로계가 주도한 숭덕학교 집회에는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고종의 봉도식을 간단히 치른 뒤 독립선포식을 거행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독립선포식은 김선두(金善斗)의 사회로 정일선(丁一善)의 독립선언서 낭독, 곽건응의 인도아래 애국가 봉창, 강규찬(姜奎燦)의 연설로 진행되었다. 독립선포식이 끝나자 곽권응·황찬영·윤원삼 등은 운집한 1,000여 명의 군중들에게 수백 개의 태극기를 배포하였으며,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경 수십명이 몰려와 시위군중을 해산시키려고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위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렬을 지어 장대현·관후리(館後里)를 지나 종로 큰 사거리로 행진하였다. 이곳에서 천도교측과 기독교감리교계 시위대를 만나 시위군중은 더욱 늘어났다. 이렇게 만세시위가 커져 일경의 힘으로 이를 저지하기 힘들게 되자 일본군이 증원되어 시위를 탄압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1919년 9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85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360·361·36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2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786∼789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6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