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함남 북청군(北靑郡) 상거서면(上車書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천도교인 안정관(安正官)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보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 후 박희순(朴熙舜) 박계학(朴界學)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고진구는 16일 장두병(張斗炳)과 함께 상거서면 상돌리(上乭里)에서 이종률(李鍾律) 등 30여 명의 천도교인을 규합하여 17일 전개될 방촌(方村) 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이종률도 엄동리(嚴東里) 천도교인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17일 안정관 등 천도교 지도자들은 고진구 등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방촌시장을 행진하였으나, 일본 경찰들의 제지로 해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고진구는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67~2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12~713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5)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