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남 평원군(平原郡) 석암면(石岩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주모자를 체포하려는 일본군에게 저항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7일 밤 석암면(石岩面) 석암시장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주동하여 1,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석암리 경찰주재소는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주모자 고사영(高士英) 목사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숨어 있는 김대준(金大俊)의 집을 급습하였다. 이때 김대준은 저항하며 주민들을 불러모았고, 일본 순사는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대준이 일본군의 칼에 찔려 상처를 입자, 시위에 참여하였던 장로 고익영을 비롯한 주민 100여 명이 일본군과 순사를 포위하며 돌 등을 던졌다. 이때 일본군의 총격으로 고익영을 비롯한 5명은 부상을 당하였다.
이 일로 고익영은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31)
- 朝鮮問題에 관한 건(1919. 10. 25)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80) 제1권 분책 1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