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4월 14일 함북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 명남동(明南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강승한은 면민 이학복(李鶴馥)·이서규(李瑞珪)·이현구(李賢求) 등을 불러 조선독립의 기운을 촉성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들이 이에 찬동하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조선독립 만세기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만세시위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거사 당일 오후 1시경 명남동 명동학교(明東學校) 뒤편 개울가에 모여든 약 300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조선독립 만세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강승한은 이날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소하였으나 1919년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31)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5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