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지에서 독립 선언과 함께 만세시위가 일어난 후 시위는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다. 3월 말부터 4월 10일경까지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전국적인 만세운동 참여 열기 속에서 신창면 일대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에 참여했다. 학성산 위에서 군중과 함께 만세를 소리높여 불렀다. 이덕균(李悳均)이 앞에서 소리치며 주도하자 군중과 같이 신창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로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대가 신창보통학교에 몰려갔다. 이때 앞장서 돌을 던지며 군중을 이끌었다. 군중들도 따라서 투석하자 학교 유리창이 깨졌다. 이렇듯 만세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 군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5월 20일 다시 구류되어 6월 2일 ‘보안법(保安法) 위반’과 ‘소요(騷擾)’ 로 기소되었다.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공소 하였으나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 했지만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920년 7월 3일 만기 출옥했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 1919. 6. 13)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 1919. 7. 23)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10. 4)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5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집 1189, 11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