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8년 12월 같은 마을에 사는 일제 앞잡이 주계주(朱啓柱)를 응징하고자 시비가 붙어 신의주검찰지청에서 태(笞) 90도를 맞았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수진면(水鎭面)사무소 앞 광장에 주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김이호(金履浩)·송영보(宋榮甫) 등과 함께 주계주를 처단하기 위해서 그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도피하였으므로 집을 불살랐다. 이로 인하여 김이호등은 체포되어 형을 받았으며, 그는 만주로 피신하였다.
만주 관전현에서 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국내진입 작전의 안내역을 담당하였다.
1920년에 군자금 모집등의 목적으로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경의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되었으며, 1920년 7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살인예비, 가택침입,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7년에 전가족을 이끌고 만주 관전현 향로구로 망명하여 계속 독립운동을 하다가 봉천에서 영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5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