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박희성은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근재(李根裁)를 비롯한 함흥군의 지역인사들은 1919년 2월 28일 함흥면 중하리(中荷里) 기독교 예배당에 모여, 서울에서 벌어진 조선독립선언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3월 3일 장날을 기하여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사립 영신(永信)학교 학생이었던 박희성은 함흥 읍내 박세근(朴世根)의 집에서 신태헌(申泰憲)과 뜻을 함께하고, 이근재 집에서 등사판을 사용하여 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 3,000여 매를 인쇄하였다. 박희성은 3일 오전에 앞의 여러 동지들과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대화정(大和町)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은 헌병과 소방대의 도움을 얻어 이들에게 총칼과 갈고리를 휘둘러 많은 부상자를 내었다. 여기에서 경찰은 학생 88명과 시민 46명을 검거하였다.
박희성은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대를 받고 7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3)
- 每日申報(1919. 3. 3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92~695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