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일 (田一) 등과 같이 모의 (謀議) 작탄 (炸彈) 수백매 (數百枚) 를 제조 왜 관리 (倭官吏) 관청 (官廳) 을 습격하려다가 1919.9.15 봉천성 내 (奉天城內) 천성여관 (天城旅館) 에서 폭탄 (爆彈) 1개가 자동 작렬 (自動炸裂) 함으로 실패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237)
2. 1920.3.4상해임정 (上海臨政) 내무부 (內務部) 지방국장 (地方局長) 에 취임 (조선민족운동연감 (朝鮮民族運動年鑑) p.73)
3. 1920.5.20까지상해임정 (上海臨政) 내무부 (內務部) 비서국장 (秘書局長) 을 지냄
(조선민족운동연감 (朝鮮民族運動年鑑) p.82)
(조선민족운동연감 (朝鮮民族運動年鑑)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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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0.3.4
3. 1920.5.2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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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1918년 8월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에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연락기관을 봉천(奉天)의 십간방물산도매상(十間房物産都賣商)으로 위장 설치해 놓고 연락업무를 수행하였다. 동년 9월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장 이석(李錫)과 동지 전성인(田誠忍)과 함께 봉천에서 폭탄을 제조하였다.
그리하여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여 의열투쟁을 지원하려고 계획하던 중, 1919년 9월 15일 밤에 봉천성(奉天城) 내에 천성여관(天成旅舘)에 숨겨 두었던 폭탄 1개가 땅에 떨어져 작열되어 전일(田一:田誠忍)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따라서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상해(上海)로 피신하여 1920년 3월 4일에 상해 임시정부 내무부 지방국장에 피임되어 근무하였으며, 1920년 5월 20일에는 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동년 12월에는 상해 대한적십자회에서 적십자병원의 설치 등을 위해서 4대(隊)의 행동대를 설치하게 되자 그는 3·1대에 속하여 모금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7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9면
- 고등경찰요사 253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5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72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73·82·12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7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52·85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