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의성군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에서 박영화(朴永和)·박영달(朴永達)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비안면 쌍계동의 만세운동은 3월 7일 쌍계동교회 목사 박영화와 박영달이 이웃의 안평면 기독교 인사들과 접하면서 계획되어지다가,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박상동(朴尙東)이 3월 8일 대구 학생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그 사실을 쌍계동 교회에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배용도 등 쌍계동 교회 인사들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2백여 매를 제작하는 한편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거사 당일인 3월 12일 정오를 기해 배용도 등은 운집한 2백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동리 각처와 뒷산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3·1운동실록(이용락) 758∼760면
- 판결문(1919. 5. 17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