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자성(慈城) 사람이다.
1907년 평남 순천에서 김관수(金寬洙) 의병진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에는 고향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1923년 11월 14일에는 서로군정서 의용사령관의 특명으로 병력을 인솔하고 국내에 진입하여 구성(龜城)에 주둔중, 평북경찰부와 강계경찰서 합동부대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여 적 2명을 사살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1924년 6월 25일에는 참의부에 소속되어 박언채(朴彦采)·김연학(金連鶴)·김시태(金時泰)·김천일(金天日)·이길상(李吉相)·이용익(李用益)·황용하(黃龍河)·예응복(芮應福) 등과 함께 자성군에 주둔하였다가 이평면(梨坪面)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적 2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만주일대에서 무장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고 하나 상세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9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57면
- 독립신문(1923.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