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이다.
1907년 7월에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용천곡(龍泉谷)을 중심으로 의병 50여 명을 그 휘하에 두고 구식총(舊式銃) 40여 자루와 서양총 10여 자루를 무기로 하여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 후 새로이 의병진에 참여한 송주상(宋柱祥)·김태동(金泰東) 등으로 하여금 의진에 종사(從事)시키고 강춘선(姜春善)은 후군장(後軍將), 김경화(金景化), 이시영(李時永)은 포군(砲軍)으로 진용(陣容)을 재정비하고난 뒤 음성(陰城)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불행히도 분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패전군 30여 명을 이끌고 죽산(竹山)의 칠정사(七亭寺)에 도달한 뒤 전봉규(全奉奎) 휘하에 있는 100여 명의 의진과 진을 합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나서 안성(安城)으로 진격하였다.
일본군과 다시 접전하여 큰 승리를 거두니 항일투쟁에 있어서 일익을 담당하였다.
1908년 11월 판교(板橋)에서 살고 있던 가족을 만나러 가던 중 일제 앞잡이의 밀고로 인하여 "느릿골"이란 지역에 잠복해 있던 일본헌병에게 체포당하여 모진 고문을 받고나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생긴 장파열(腸破裂)로 1908년 11월 4일에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고 전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1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