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7. 4
3. 1932. 10
4. 1933. 5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1928년 북경에서 이상일(李尙逸)과 함께 주구(走狗)숙청과 일제 고관의 암살을 목적으로 조선혁명당총동맹(朝鮮革命黨總同盟)을 조직하였다.
북경책임자로 이상일이 선출되었고 그는 천진책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교포중에는 일병(日兵)의 밀정 노릇을 하는 한국인 주구들이 다수 있었는데, 이중에도 천진에 있는 이태화(李泰華)는 악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명령으로 동년 8월경에 동맹원 전창국(全昌國)이 천진 일본조계 내에 잠입하여 이태화를 총살 제거하였다.
또 1930년 동맹원 장기준(莊麒俊)을 지휘자로 동맹원 수명은 백주에 천진일본은행을 습격하고 거액의 돈을 탈취한 뒤 이를 군자금에 충당하였다.
1931년에 야기된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의 대륙침략이 노골화하자 중국 국민의 대일감정을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이런 기회를 포착한 총동맹간부들은 비밀회의를 열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계대전이 일어나 민주진영이 승리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란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따라서 세계대전 유도책으로 열강의 조계가 많이 있는 천진에서 일본조계를 점령할 계획을 세워 제일착으로 만주전권대사(滿洲全權大使) 무등신의(武藤信義)를 총살코자 동맹원 이창용(李昌用)·박민항(朴敏杭)·최윤식(崔潤植)을 선출하였으며, 이 계획을 그가 총지휘하게 되었다.
이 결사대 3명은 폭탄 4개, 권총 3정 등을 휴대하고 만주에 가서 무등신의 전권대사의 뒤를 따라 장춘(長春), 봉천(奉天) 등지를 전전하며 총살제거할 기회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장춘 중앙여관에서 무기가 발각되어 일본헌병대에 이창용·박민항이 체포 구속되었다. 악랄한 고문 끝에 지휘자인 손기업의 비밀장소가 발각되어 천진에서 체포됨으로써 그 자신도 장춘으로 압송당하였다.
이때 일본은 장춘, 봉천 등 중요지를 점령하고 만주와 중국본토의 경계지대인 열하(熱河)를 점령하고 전쟁구실을 찾고 있던 차 산해관(山海關)안 북경에 있는 장학량군(張學良軍)이 부하를 시켜 이들을 구출할 목적으로 일본헌병사령부를 포위 습격하여 온다고 허위 책략을 꾸며내어 열하작전을 야기하였다.
총지휘자인 손기업을 위시하여 동맹원 이창용·박민항 등은 일본헌병에게 갖은 야만적인 고문을 당하고, 1933년 5월 27일 장춘 일본군법회의 임시관동군법무부(長春日本軍法會議臨時關東軍法務部)에서 재판관 단우소좌(丹羽少佐)로부터 소위 폭발물 취체규칙위반(取締規則違反)으로 각각 징역 10년형을 받고 여순(旅順)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박민항은 동년 10월에 옥사하고 그와 이창용은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8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88·1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