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 있는 남산(南山)에서 구중회(具中會)·남경명(南景明)·구남회(具南會)·구판진(具判珍)·신암우(辛岩宇)·장정수(張正秀)·구판돈(具判敦)·박도문(朴道文) 등 23명의 동지들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맹세서에 서명한 후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일경과 육박전이 벌어지자 맨손으로 항거하다가 일경의 군도에 맞아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지 4개월후 시위중 입은 상처와 옥중에서 당한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0년 3월 5일 향년 23세로 사망(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제적등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31·23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26∼12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