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청북도 제천(堤川) 사람이다.
1925년 3월 제천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청에 근무하다가 신간회(新幹會)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 봉천(奉天)지국 보급원으로 만주로 건너갔으며, 1931년 다시 북경(北京)으로 옮겨가 원심창(元心昌)의 권유로 무정부주의 운동에 종사할 것을 결심하고 상해로 갔다.
1931년 5월 상해(上海)에 있는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여 무력적인 항일투쟁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동년 12월에는 그 실행부원이 되어 혁명적 역할을 담당할 결심으로 백정기(白貞基)의 권유에 의거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백정기의 제안에 따라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엄순봉(嚴舜奉)·김성수(金聖秀)와 함께 활동하였다.
1932년 상해사변이 발생하자 일시 피신하였다가 일제침략 원흉의 암살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동년 12월에는 유기석(柳基石)의 권유로 천진 일본총영사관에 수류탄을 던졌으나 큰 피해는 입히지 못하고 일부를 파괴하는데 그쳤다.
1933년 3월에 상해에서 일본공사 유길명(有吉明)의 암살계획을 수립하였으며, 1935년 3월에는 정화암(鄭華岩)과 함께 엄형순·이규창(李圭昌) 등으로 하여금 상해 거류민회 부회장인 친일파 이용로(李容魯)를 총살 처형하도록 하였다. 1937년에는 중경(重慶)에서 조직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여 중앙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계속 항일투쟁에 여념이 없던 그는 1938년 12월 18일 마침내 유길명 공사의 암살계획 혐의로 북경(北京)에서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본국으로 압송된 그는 1940년 11월 20일에 경성(京城)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강도미수, 폭발물 취급법 위반 및 살인미수라는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09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39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4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649 674 676 711 712 744 74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16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88면
- 동아일보(1939. 1. 3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825 833 838 846 847 8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0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81 7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