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8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서 명치(明治)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다시 정칙(正則)영어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학비조달이 어려워 신문배달, 공원, 우체부 등으로 일하면서 고학하였다.
그는 노령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던 친형 서상일(徐相日)의 영향을 받아 항상 항일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있었으며, 1920년 1월에는 유진걸(柳震杰)·김낙준 등 동지들과 함께 「동경노동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는 동경에 있던 「고학생동우회」와 맥락을 같이하는 단체였는데 그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동년 4월 29일에 매국노들의 간계에 의해서 영친왕(榮親王)과 일본황족인 이본궁방자(梨本宮方子)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그는 폭탄투척을 계획하였다. 그는 이 결혼이 장래 한국의 독립에 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 식장에 폭탄을 던지고, 동시에 일본 내무성과 외무성, 경시청 등을 폭파하기로 하였다. 그해 2월경부터 동지 양주영(梁柱瑛) 등과 함께 폭탄을 제조하기로 하고 물고기를 잡는다는 핑계로 일본인 학생 금정생랑(今井生郞)·상촌흔작(上村欣作)과 같이 폭탄을 만들어 왕자원(王子原)에 가서 실험하였는데 그 위력이 양호하였다. 그리고 중앙대학생인 신(申)모에게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고 거사장소에 들어갈 것을 걱정하니 신은 우체부로 가장하면 걱정없다고 말하고 배달부옷 한벌을 구하여 주었다. 그러나 신은 본시 일본의 밀정으로 그 기밀을 밀고하게 되니 서전에 발각되어 1920년 4월 11일 붙잡혔다.
그는 동년 9월 22일 동경공소원에서 금고 4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2년 초에 그는 다시 유진걸 등과 함께 「고학생동우회」의 분신으로 형설회(螢雪會)를 조직하였으며, 그후에는 아나키스트 클럽인 당시 동경의 흑우연맹(黑友聯盟)과 제휴하여 노동운동에 전념하였다. 광복후에도 계속 일본에 거주하다가 1967년에 동경에서 별세하니, 재일교포들은 사회장에 준한 단체장의 예로서 장의식을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407·409·410·411면
- 고등경찰요사 1·155·162·19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41·415·416면
- 박은식전서 상권 664면
- 동아일보(1920. 6. 12, 7. 21)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66·68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447·171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494·528면
- 기려수필 286·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