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충남 서천(舒川) 사람이다.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인 1936년 3월에 동교생 구자훈(具滋勳)·김해인(金海仁)·천영관(千永寬) 등과 함께 항일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사용금지(日語使用禁止)·신사참배거부(神社參拜拒否)·악질일인교유배척 등을 전개하는 한편 무궁화식수장려 및 미신타파 등 계몽활동을 펴면서 민족의식 고양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졸업한 후 동회원이었던 천영관이 1942년 6월경에 일제의 패망을 언급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동 클럽의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그도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42년 9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2월 31일에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