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대구(大邱)사람이다. 1915년 중국 상해를 왕래하면 서 비밀경사 광복단(光復團)에 입단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던 그는 광복단의 조직이 노출되어 동지들이 일경에 붙잡히자 1918년 10월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 안동현(安東懸)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남북만주와 상해방면 독립운동자의 연락책임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1년 1월 만주 봉천(奉天)에서 동지 황일청(黃一淸)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고 동년 3월 임시정부 특파원의 자격으로 백원·오백원·천원권 등 세 종류의 공채증서 3백여 장과 육혈포 1정, 탄환 12발을 소집하고 입국하였다. 그는 국내에서 3~4천원의 군자금을 모금하고 동년 4월 27일 파고다공원에서 동지로부터 작은 질항아리에 폭탄을 넣고 고추장을 덮은 후 그 위에 백지로 봉하여 반찬거리로 위장한 다이나마이트를 인수받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21년 7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 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 1925년 봄 대구의 사상단체 정오회(正午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6년 3월에는 대구 노동공제회(勞動共濟會)의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던 중 옥중여독으로 생긴 늑막염으로 1931년 7월 19일 영면하였다. 그의 장례는 사회운동단체연합장으로 거행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279-1280면
- ·동아일보(1921. 5. 4, 7. 12, 7. 18, 7. 21, 1926.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