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 4
○ 1920. 12. 13
○
(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항상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3월 31일 고진태(高鎭泰)·김인수(金仁洙) 등과 같이 의주군(義州郡) 고령면(高靈面) 영산(永山) 장터에서 만세를 주도한 후, 곧 압록강을 건너 만주 관전현(寬甸縣) 납자구(拉子溝) 유양전(柳楊甸)에 거주하면서 대한독립단에 가입 활약하였다.
같은 해에 김정백(金正白)·김진화(金振華) 등과 함께 학무총장 이 탁(李鐸)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하여 평양에 다녀오라는 명령을 받고, 동단 총재 박장호(朴長浩)로부터 이때 사용할 선전문서와 미국제 신식 9연발 자동권총을 제공받았다. 그후 평양으로 들어가 평양거주 안씨(安氏)로부터 20원, 김영선(金榮善)에게 30원, 정현조(鄭賢朝)에게 백원을 각각 모금하고 대한독립단 재무부장 명의의 수령증을 교부하였다.
동년 10월에는 김근하(金根河)·이명서(李明瑞)·함 일(咸一) 등과 함께 평양의 일제기관을 파괴하는 한편 평안남·북도 각지를 왕래하면 군자금 모연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 평북 의주군 가산면(加山面) 가송동(加松洞)에서 김용국(金用國)·김치규(金致奎)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연하고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자를 주살하고자 동년 12월 23일 평북 용천군 읍동면(邑洞面) 성동리(城東里)에 거주하는 최시준(崔時俊)과 최시걸(崔時傑) 형제를 쏘아 사살 또는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우승창(禹承昌)·주상옥(朱尙玉) 등과 함께 평북 선천군(宣川郡) 태산면장(台山面長) 김병준(金炳駿)과 동 면서기 김은기(金殷基)가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이므로 이들을 처단하고 공급을 군자금으로 몰수할 것을 결심한 후, 1920년 3월 15일 상오 10시 20분경 태산면사무소에 이르러 이들을 총살하였다.
동년 4월에 다시 평양의 일제기관을 습격하였는데 일경은 그의 부인 차씨(車氏)를 경찰서에 구속해 놓고 남편의 거소를 대라고 하니 끝까지 모른다고 버티므로 고문하여 죽게 했다. 그후 독립단본부로 돌아오는 길에 1921년 7월 관전현 상루구(上漏溝)에서 평북경찰부 형사대에게 체포되어 동년 10월 2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당하고 마침내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6·302·48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284·28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5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