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1938년 2월경부터 평소 뜻을 같이하던 남원수(南源壽)와 함께 독립운동을 펴기로 뜻을 모으고 1938년 4월경에는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 울진을 중심으로 노하순(盧夏淳)·최효대(崔孝大)·전찬문(田燦文) 등과 함께 비밀결사 준향계(準香 )를 조직하였다.
준향계는 일경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계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일제의 중국침략 전쟁이 장기화되면 일제가 반드시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는 1939년 4월 준향계와 유사한 목적과 조직형태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여 동지 22명과 수차에 걸여 회합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1943년 3월 19일 조직이 발각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1944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7면
- 판결문(1944. 7. 21 대구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