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제주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늑결되자, 호남의 의병장인 최익현(崔益鉉)과 신돌석(申乭石)이 의거의 기치를 올렸음을 듣고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할 것을 결의하여 거사계획을 협의하였다.
1908년 김석윤(金錫允) 노상옥(盧尙玉)과 함께 장성(長城) 출신 의병장 기우만(奇宇萬) 기삼연(奇參衍) 등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제주(濟州) 및 광양(光陽)에서 의병운동의 효과적 전개를 위한 무기를 비밀히 제조하여 공급하였다.
한편 의병을 모집하여 황사평(黃蛇坪)에서 훈련시킨 후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때 김석윤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참모(參謀) 및 모병책(募兵責)을 맡아 활약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09년 2월 10일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게 되자 의병운동을 거도적(擧島的)인 규모로 확대하여 대규모의 항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동지인 김만석(金萬石)을 대동하고 대정(大靜)에서 창의 격문(倡義檄文)을 살포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 적에게 체포되어 음력 2월 13일 서광리(西廣里)에서 김만석과 함께 피살 순국하였다. 제주시에는 그의 항일투쟁을 기리는 의병항쟁기념탑이 건입동에 세워져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제주의병행장 비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