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0년 폭탄제조의 기술책임을 맡고 이를 제조하다가 동년 5월 10일
3. 1921년 여름
4. 1944년
5. 1945년 2월 군사시설파괴 모의타가 발각 피신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00년 평양숭실학교 2학년을 수료하고 평양 군영(軍營)에서 하사관 교육을 받고 1904년에 미주로 건너가 카나다 크리스트대학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지방에서 선교사 및 건축 기술자로 일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1월 정찬도(鄭燦道)·고창희(高昌熙) 등과 상의하고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평양에 들어와 활동하였다. 한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이근수(李根洙) 및 강성리(康聖利) 등과 평남도청 및 평양경찰서의 폭파와 시위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또한 '독립신문'과 선전 문서를 각처에 배포하여 독립사상 고취에 진력하였다.
1920년 5월 9일 고창희의 집에서 비밀결사 모험단(冒險團)을 조직하고 미리 계획한 도청·경찰서 등의 폭파 방법을 상의하던 중 일경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장기간의 옥고와 고문을 당한 끝에 1921년 1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7년 6월 9일 감형으로 가출옥하였다.
1944년에는 대동군 남곳면 두단리 사건(평양신사 방화)에 가담하였으며, 1945년 2월에는 평양의 일 군사시설 파괴 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었으나 재빨리 피신하여 화를 면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2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1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55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2·306·307·3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