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남 김해(金海) 사람이다.
진주농업학교 재학중인 1920년 8월에 동교생 신영안(申英安)·김익상(金益祥) 등과 함께 일제의 천장절(天長節)인 8월 30일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진주농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동교생 박학두(朴學斗)와 함께 기숙사에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 3백매를 인쇄하였다.
거사계획은 8월 30일 오후 7시에 진주공원·농업학교앞·재판소앞 등 세곳에 모여 일제히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는 것이었다.
거사에 앞서 8월 28일에 동교 기숙사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거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제1, 제2보통학교·광림학교·기독청년회·청년친목회 등 학교 및 단체에 통보를 하였는데 도중에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거사 직전인 8월 30일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20년 10월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후 모교인 진주농업학교에서는 그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
- 신원증명서
- 3·1운동실록(李龍洛) 65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9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7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