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9 망명
2. 신흥무관학교 졸업 (김학규 (金學奎) 와 동기생)
3. 동지들과의열단 (義烈團) 조직하여 각 사건마다 경비조달 (국내에서 피체 , 옥고 )
4. 1924 중국국민당 일차 전국대표대회 때 옵써버로 참석, 황포군관학교 졸업, 북벌전에 참가
5.중국 (中國) 의 원조로 비밀한국인군사학교를 조직, 간부 촉성
6. 한국인의용군 (광복군 (光復軍) 일지대 전신)의 비서장으로 대 중전에 참전 (제출 공적서)
7.임정 내무부차관 (臨政內務部次官) 역임 (歷任) (제출 공적서)
8. 1945 해방후무한지역 교포 선무단장 (武漢地域僑胞宣撫團長) 과 광복군 (光復軍) 5지대장 (支隊長) 에 피임, 동포의 생명 재산 보호(독립운동사 (獨立運動史)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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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흥무관학교 졸업 (
3. 동지들과
4. 1924 중국국민당 일차 전국대표대회 때 옵써버로 참석, 황포군관학교 졸업, 북벌전에 참가
5.
6. 한국인의용군 (
7.
8. 1945 해방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1917년 광복회(光復會) 조직에 참여하여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 폭탄 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종로서, 총독부, 동척(東拓) 등의 폭탄 투척과 동경 이중교(二重橋) 투척 등을 적극 지원하였다.
1926년에는 황포(黃埔)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북벌전(北伐戰)에 참전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한구(漢口)에서 개최된 한국, 중국, 인도, 몽고, 안남(安南), 대만인 등으로 조직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32년에는 남경(南京)에서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그 교관으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약하였다. 1934년에는 중국군 연장(連長)으로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면서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4년 중경(重慶)에서 임시정부에 들어 와 내무부차장에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33·134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42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19·42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3·381면
- 고등경찰요사 97·10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47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83·479·545·827·8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8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13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3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86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7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