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그는 대구계성학교 6년 재학중 1919년 3월 8일 서문외(西門外) 시장에서 학생 등 약 7, 8백 명의 군중과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3월 2일 기독교 지도자 이만집(李萬集)이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고서 계획되어졌다. 그리하여 기독교 지도자와 계성학교 교사들이 주동이 된 이 계획은 3월 8일 서문외 시장 장날인 3월 8일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추진해 갔다.
이 때 정원조는 계성학교의 대표로 만세운동 계획에 참가하면서 비밀리에 학생들을 규합하는 한편 대구고보생들과 만나 서로 연대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8일에 이들 학생은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시위행진에 앞장 서면서 1천여 명의 시위군중들과 함께 일제 경찰서 앞으로 행군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18. 대구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64∼12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