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4. 6. 1 통의부 (統義府) 제5중대원 (弟五中隊員) 으로 만철연선 (滿鐵沿線) 친일파토벌을 위하여 김광추 (金光秋) 휘하에서 활약 친일파 조선인민회 정갑주 부자 (父子) 를 살해함.
2. 1924. 6. 7만주 (滿洲) 보인회를 습격하여 친일파 거두 최창규의 부하 허윤 (許鋆) 과 최창규의 장모 이씨 (李氏) 를 살해함(최창규 장모는 황덕환 (黃德煥) 이 죽인 것임)
동년에봉천 (奉天) 금정관 (金井館) 에서 군자금 300원 (円) 을 강탈하여 피신하다가 중국관헌에 피체
3. 1927. 3. 23여순고등법원 (旅順高等法院) 에서 20년형을 받고 복역 하다 감형되어 15년 옥고 끝에 출감(동아일보 (東亞日報) 1926. 9. 1, 9. 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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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4. 6. 7
동년에
3. 1927. 3. 23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구미(龜尾) 사람이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1912년 4월 부친을 따라 만주 봉천성 청원현으로 건너갔다. 1922년 통의부(統義府) 제5중대원으로 들어가 만철연선(萬鐵沿線)의 친일파 토벌을 위하여 김광추(金光秋)의 휘하에서 특공대원으로 활약하였다.
1923년초 무순방면의 고등계 첩자이며 조선인회 서기인 악질 친일파 정갑주(鄭甲周) 부자를 주살하고, 동년 6월에는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여 이용구(李容九)와 더불어 열성 일진회(一進會)원으로 국권침탈에 앞장섰던 악명높은 친일파 거두 최정규(崔晶奎)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이미 피신하고 없으므로 그의 부하 허 윤과 가족을 사살한 후 일본인 요정 금정관(金井館)에서 군자금 300원을 빼앗아 피신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4년 대련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27년 여순(旅順)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두차례의 감형으로 18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1943년 3월에야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5면
- 동아일보(1926. 9. 1, 9. 2,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