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양산(梁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大邱)에서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800여명 군중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쓴 대형 깃발을 높이 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64∼1274면
- 판결문(1919. 4. 18 대구지방법원)
- 판결문(1919. 5. 31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19. 7. 24 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