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중순 들어 경상북도 지역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面) 면민들은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영일군 송나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 교회 교사로 있던 윤영만은 동 교회 목사 윤영복(尹永福)·오용간(吳用干) 등과 함께 덕성리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을 동지를 규합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만세시위를 추진해 나갔다.
3월 22일 그는 덕성리 장날에 맞춰 만세운동을 하러 가던 중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윤영만은 체포되었지만, 윤영복과 오용간은 덕성리 장터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청하헌병주재소(淸河憲兵駐在所) 헌병들은 무력 진압하며 참가 인사들을 체포했다.
독립만세를 추진하다가 체포된 그는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5월 27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권 1374~13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