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5월 경북 상주군에서 김주희 (金周熙) 를 교주로 하는 동학교 (東學敎) 를 설립하여 활동하다 1936년 8월 체포되고, 1943년 음력 4월에서 10월경 신도들에게 “동학교를 신봉하면 고위 고관이 될 수 있고,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서구 열강이 모두 패배하면 조선․중국․러시아만이 잔존할 것”이라는 내용의 설교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도중 1944년 11월 옥사함.
다만 1896년 1월에서 4월경까지 경북 일대에서 을미의병에 참여했다는 내용은 활동 당시의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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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896년 1월에서 4월경까지 경북 일대에서 을미의병에 참여했다는 내용은 활동 당시의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22년 5월경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김주희(金周熙)를 교주로 하는 동학교가 설립되었다. 김낙세는 동학교의 부교주로 활동하며 상주군 은척면 우기리에 동학교당을 설립하였고, 찬시가·안심가를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36년 음력 4월 동학교 본부 헌성식(獻誠式)에서 교도들에게 동학교를 믿으면 세상이 바뀌고 조선이 태평하다고 설교했다. 더불어 여러 나라와 전쟁하는 일본의 멸망을 예언했다. 같은 해 음력 7월과 음력 10월에도 설교로 대중들의 민족의식을 높였다.
태평양전쟁기인 1943년에는 동학교를 믿으면 새로운 국가가 창조된다고 설교하여 대중을 각성시켰다. 그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8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조선임시보안령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11월 14일에 옥사하였다. 생전에 집필한 수상록(收桑錄) 등 일기 17권이 남아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 1944. 8. 4)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사망진단서(死亡診斷書)(대구형무소 : 1944. 11. 14)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75면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10. 3, 1936. 7. 2, 8. 16)
- 매일신보(每日申報)(1936. 7. 4)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6. 7. 24, 8. 15)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40) 제22호 24면
- 김낙세 일기(상주동학교당 소장 필사본)
- 찬시가(김낙세, 상주동학교당 소장 필사본)
- 상주신문(1997. 3. 6)
- 상주삼백신문(2007. 8. 24)
- 「상주동학촌의 형성과 전개과정」(안태현, 역사민속학 15, 2002) 177~178면
- 제9호 상주동학교당 기록물 소개(국가기록원 국가지정기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