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11~12 경북 (慶北) 경주군 (慶州郡) 경주읍 (慶州邑) 노동리 (路東里) 교회당에서 박래영 (朴來英) , 윤기효 (尹琪涍) 등의 주도로 3월 13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박문홍 (朴文泓) 의 집에서 태극기 3백여개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으나 일경 의 탐지 (探知) 로 인해 동지들이 피체 되어 실패하자 다시 동년 3월 15일 박봉록 (朴鳳祿) , 서봉룡 (徐鳳龍) 등이 주도하여 경주읍 (慶州邑) 장날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전개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장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 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피체 되어 징역 4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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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1∼12일 경주군 경주읍(慶州邑) 노동리(路東里)에서 박내영(朴來英)·윤기효(尹琪涍) 등의 주도로 3월 13일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박문홍(朴文泓)의 집에서 태극기 300여 매를 만드는 등 준비를 하다가 일경에 사전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그는 다시 3월 15일 박봉록(朴鳳祿)·서봉룡(徐鳳龍) 등과 함께 경주읍 장날에 장터에 모인 다수의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신원증명서(경주시장, 1977. 1. 25 발행)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43면
- 3·1운동실록(이용락) 732·7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