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1919년 봉산군 사인면 만화리(舍人面 萬和里)의 예수교회 조사(助事)로 서종면 단장리(西鍾面 丹墻里)의 청년 이기풍(李基豊)·진학철(陳學哲) 등과 연락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사리원(沙里院)에서 가까운 이곳은 1919년 3월 12일에 기독교인과 사리원 장꾼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들은 아침 9시경 많은 장꾼들이 사리원으로 향하여 이곳을 지나갈 때를 이용하여 미리 준비해 온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독립만세의 함성을 울렸다.
이에 지나가던 장꾼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였으나 헌병대의 출동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다.
이때 그는 주동인물로 이기풍·진학철 등과 함께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형을 선고받아 상고하였으나 3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7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716∼71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