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군위(軍威) 사람이다.
1926년 1월 북경(北京) 등지에서 활동하던 김창숙(金昌淑)의 밀명을 받고 경북 지역의 담당자로 파견된 정수기(鄭守基)와 함께 경북 대구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창숙은 1926년 1월 군자금 모금차 중국으로부터 밀입국하여 내몽고(內蒙古) 지방의 미간지와 황무지 20만 정보를 매입하여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즉 만주 지역의 한인들을 집결시켜 개간사업을 일으키고, 그 수익금으로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여 군대를 양성하는 둔병식(屯兵式)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10년 동안의 실력양성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수기와 함께 대구부 대산동 이기원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청하는 등 유림단(儒林團)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중 1926년 4월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6. 5. 21, 1927. 2. 11, 1928. 8. 14)
- 예심종결결정서(1927. 1. 21.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306·312·359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84·285면
- 벽옹김창숙일대기(심산사업회) 1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