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황해도 황주(黃州)군 겸이포(兼二浦)면 대송칠(大松七)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소위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평양지방의 학생대표로 전덕기(全德基)가 목사로 있는 상동교회(尙洞敎會)의 모임에 참가하여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승길 등은 이 준(李儁)이 지은 상소문인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최재학(崔在學)을 소두로 하여 올리고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시위를 했으며, 시내로 진출하여 시민들에게 가두연설을 하여 시민들을 궐기케 함과 동시에 일제 헌병대와 투석전을 하면서 을사조약 반대 시위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 안창호(安昌浩) 전덕기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황해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가 만주에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고 독립군기지 창건사업을 추진할 때 황해도에서 김도희(金道熙)의 연락을 받고 자금모집과 이주민 모집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의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사건이 일어나자 일제가 이를 기화로 황해도의 신민회 회원들과 독립군기지 건설사업의 추진자들을 1911년 1월에 일거에 체포할 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15년의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3 1운동 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1920년에 임시정부 지방선전대(地方宣 隊)의 황해도 재령(載寧) 선전대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21년 1월에는 동지들과 함께 임시군사주비단(臨時軍事籌備團)을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 15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21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4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0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604 6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668 66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74면
- 재판문(이승길선생 포상신청서보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92 59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4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12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545 546 547 550 5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5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805 807 811 96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