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신이다.
1906년 정용기(鄭鏞基)가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거의(擧義)하자 입진하여 권규섭(權奎燮)·성낙희(成樂熙)·성낙호(成樂 )·이하수(李河秀)·양석용(梁錫容)과 함께 신녕(新寧) 지방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약관 24세이었으므로 군중 내에서 그를 24장(將)이라 하였다.
그후 선봉장이 되어 영덕(盈德)·강구(江口)·흥해(興海)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여 격퇴시키고 포장(砲將)으로 임명되어 맹활약하다가 1907년 9월 입암(立巖) 전투에서 적과 접전하던 중 의병장 정용기는 순국하고, 황보 근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당하게 되었다.
그를 체포한 삼목(三木)에게 17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다가 석방된 후 은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산남창의지(하권) 6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