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16년 9월에 서울 배재학당(培材學堂)에서 수학(修學)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에 배재학당(培材學堂) 학생들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 후 그는 동년 12월에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고 만주(滿洲)로 건너간 뒤 그곳에서 김영찬(金永燦)을 만나서 〈독립신문(獨立新聞)〉등 다수의 문서를 교부받았다. 그리하여 고향에 돌아와 교회를 통하여 이 문서들을 배부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1921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울진지청(蔚珍支廳)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1. 3. 31 대구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 2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