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며, 서울에서 자랐다.
한말(韓末)에 함안군수(咸安郡守)와 육군참령(陸軍參領)을 역임하였고, 그 후 개화당(開化黨)에 들어가 혁신운동을 전개했으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천도교에 입교하여 도사(道師)가 되었다. 귀국 후 1919년 2월 상순경에 최남선(崔南善)과 최 린(崔麟)이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여 조선의 독립은 시대의 대세에 순응하며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으로서, 무엇으로도 저지·억제할 수 없으므로 조선민족은 마땅히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의 의사를 발표하고 서로 힘을 모아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를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독립 선언서를 보고, 우선 손병희(孫秉熙)·오세창(吳世昌)과 함께 그 취지에 적극 찬성하였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의 무단정책을 비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보낼, 민족자결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찬동하는 요지의 청원서와 파리강화회의의 참가국 위원들에게 제출할 의견서 초안을 검토하고 이에 찬동하였다. 그리고 손병희·오세창과 함께 천도교인의 대표로서 2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당시 천도교 기도회의 종료보고와 국장을 참배하기 위하여 상경한 천도교 도사 임예환(林禮煥)·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권병덕(權秉德)·나용환(羅龍煥)·장로 이종훈(李鍾勳)·홍병기(洪秉箕) 및 교인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만세운동계획을 알리고, 민족대표로서 같이 서명할 것에 찬동을 구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仁寺洞)에 있는 태화관(泰華館)에서 민족대표 33인으로 서명한 사람 중에서 지방에 거주하는 길선주(吉善宙)·유여대(劉如大)·김병조(金秉祚)·정춘수(鄭春洙) 등 4명이 빠지고 29명이 모였다. 그는 이 때 민족대표단의 1인으로 참여하여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만세삼창을 외치고, 일본경찰에 의하여 경시청총감부(警視廳總監部)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신간회(新幹會)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계속 조국 광복과 민족 정신 앙양에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30·682·699·702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6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65·468·575면
- 고등경찰요사 17·22·49면
- 조선독립운동년감 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78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584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391·402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1면
- 기려수필 81·235·41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67·70·76·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1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78·590·640·657·658·663·665·70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752·753·754·761·768·111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3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96·123·131·238·254·18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2권 3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10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14·20·28·38·41·43·44·46·5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292·293·313·84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5·103·147·148·236·43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307·309·786·8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