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청도(淸道) 사람이다.
1919년 4월 20일 대성면 거연동(大城面巨淵洞)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3월 31일 자기의 집에서 백지로 태극기를 제작하고 그 옆에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써서, 이것을 경부선 철도변에 게양하여 인근 주민과 여행객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4월 200일 밤에는 동리의 서기철(徐基喆)이 경영하는 단산서당(丹山書堂)에서 같은 서당학생인 이만희(李晩羲)·성삼백(成三伯)·최갑수(崔甲壽)·최술권(崔述勸) 등과 태극기 1매씩을 제작하여 이날 밤 다시 철로변에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28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1년에는 김진효(金鎭孝) 등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의 특파원인 박윤조(朴允祚)를 통하여 군자금 7백원을 전달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다시 조경윤(趙景潤)·이정희(李庭禧) 등과 군자금 4백원을 박윤조를 통하여 전달하였다. 1923년에도 김영동(金英動)과 같이 대구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듬해 10월에는 자신의 토지를 처분한 금액 6백원을 박윤조를 통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43·14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49·4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