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 6월 일본 (日本) 대판시 (大阪市) 소재 일본대학 (日本大學) 대판중학교 (大阪中學校) 학생으로 재학 중 전영수 (田永秀) , 남상순 (南相淳) , 허만준 (許萬準) 등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고 운동의 중핵모체 (中核母體) 로서 비밀결사 충성회 (忠誠會) 를 조직, 1942. 12월경까지 30여회에 걸친 모임을 통해 기소유예를 받았으나 3월간의 옥고 를 포함하여 1년 6월여간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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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핵모체(中核母體) : 중심 단체, 중앙 단체
-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41년 일본 대판시(大阪市) 소재 일본대학(日本大學) 대판야간중학교(大阪夜間中學校)에 다니면서 전영수(田永秀)를 비롯해 남상순(南相淳)·조경복(趙景福) 등의 동지들과 함께 학생들의 단결을 통해 한국독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1941년 6월 이후 1942년 12월경까지 전후 30여 회에 걸친 회합을 갖고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면서 독립운동의 중핵 모체가 될 「충성회(忠誠會)」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충성회」는 회를 상징하는 휘장으로 사람 인(人) 자를 정해 고금의 민족 해방운동자를 상기하게 하는 한편, 향리에 야간사숙을 열어 수시로 귀국, 이를 통해 지방민의 민족의식을 고취할 것과, 일제와 소련이 개전하게 되면 조직적인 항일전을 벌여 독립을 쟁취할 것, 안중근(安重根)과 이순신(李舜臣) 등의 위인 애국자들을 선양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을 벌이던 중 1942년 12월 16일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으며 이듬해 3월 12일 석방되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8권 149∼1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200∼20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68∼13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