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대구상업학교 재학중인 1927년 10월에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 김봉구(金鳳九)·현철수(玄鐵洙)·정수광(鄭壽光) 등과 함께 항일민족운동의 방안으로서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신우동맹(新友同盟)에 참가하였는데 이때 그는 제2그룹 책임자 및 대구상업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신우동맹은 동년 12월에 혁우동맹(革友同盟)으로 개편되었는데, 다시 조직이 일경에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1928년 2월에 회원 상술상(尙戌祥)의 집에서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적우동맹(赤友同盟)으로 변경 조직하였다. 이때 그는 동 결사의 재정부위원의 일을 맡았다.
적우동맹은 회원을 각 그룹별로 나누어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매월 1회 월례회(月例會) 등을 개최하면서 활동하였는데 두 달만에 해산하였다.
그후 이들은 동년 4월말에 다시 사회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한 일우동맹(一友同盟)을 조직하여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는데, 그는 동맹의 출판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그는 이러한 비밀결사의 활동외에 대구고등보통학교의 맹휴운동도 주동하여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맹휴와 관련하여 동 결사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1928년 11월에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30년 3월에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312·313·314·315·316·317면
- 조선일보(1929. 9. 12, 9. 13, 1930. 3. 13)
- 판결문(1930. 3. 11 대구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