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41년 1월 27일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 있는 박상노(朴相老)의 집에서 허남귤(許南橘)·이길우(李吉雨) 등 20대 청년들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동진회’를 조직하였다. ‘동진회’라는 결사의 명칭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왜놈을 거꾸러트리자’는 뜻에서 정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회장 허남귤, 총무 이길우가 선정되었다.
이후 동진회는 매월 두 차례의 정기모임을 갖고 서로가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고 독서토론을 하면서 항일민족의식을 함양하였다. 또한 같은 해 7월 만주(滿洲)로 돌아가는 이상도를 통해 만주의 독립운동단체로부터 항일투쟁의 방략을 지시받기로 하였다.
1942년 2월 15일 정기모임에서는 본격적인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부조직으로 농민친목회(農民親睦會)와 소년독성회(少年獨成會)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이후 이 조직들을 통해 일제의 강제공출에 대한 반대, 학병·지원병 모집 반대, 신사참배 거부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일제의 군수품 수송을 방해할 목적으로 유천철교(楡川鐵橋)와 경찰서 파출소 등 철도와 관공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필요한 폭탄을 만주에서 마련하고자 했다. 폭탄을 입수하기 위해 만주로 향하던 허남귤이 1943년 7월 대전 부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동진회 실체가 발각되었다.
1943년 9월 14일 김용덕을 비롯한 다수의 회원이 가택수색(家宅搜索)을 당하고 일본 경찰 체포되었다. 1944년 2월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 구속 집행정지 처분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 협조 의뢰에 대한 결과 통보(내무부, 1977. 3. 14)
- 출소확인서(부산교도소장, 1977. 5. 9)
- 자유민보(自由民報)(1949. 4. 23)
- 민주신보(民主申報)(1949. 4. 23)
- 부산일보(釜山日報)(1949. 4. 23)
- 진술서(김용덕, 1977. 5)
-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허남귤, 이길우)
- 청도의 독립운동사(권대웅 외, 청도군, 2010)
- 일제말 항일비밀결사운동 연구(변은진, 2018) 1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