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전주지역 만세시위계획은 1919년 3월 1일 전북 전주(全州) 천도교 교구실에 서울에서 온 인종익(印宗益)이 독립선언서를 전하면서부터 추진되었다. 주도자들은 3월 13일 전주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전주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이던 김나현은 김순실(金淳實) 등 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정오경 남문에서 울리는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였다.
천도교와 기독교 및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학생을 주축으로 구성된 시위대열은 남문시장에서부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하였다. 도중에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 주었다. 시위대는 제2보통학교를 거쳐 대화정(大和町, 현재 영화동)을 지나 우편국 앞에 이르렀다. 이때 일본 헌병과 경찰이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광분하였다. 일시 해산한 시위군중은 오후 3시경 다시 남문 부근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남문을 출발할 때 1백여 명 정도였던 시위군중은 우편국에 이르렀을 때는 5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다시 일본 헌병과 소방대가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고 심지어 소방용 갈구리로 군중을 마구 찍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세시위는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5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김나현을 비롯한 기전여학교 학생들이 전주감옥 분관에 입감되어 있을 때 시학관(視學官) 다나카[田中]가 와서 그들을 심문실로 불러내어 회유·설득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독립운동을 중지하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1919. 6. 30)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182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9. 3)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1권 66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95∼498면, 제9권 280∼281면, 제10권 8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