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2121
성명
한자 魯炳憙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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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06 면암 거의 모의(勉庵擧議謀議)에 참가하고 군자금으로 모금된 한전(韓錢)환지대(換紙貸)하여 활용하게 하였고, 한의(漢醫)로서 대마도(對馬島)에까지 가서 면암(勉庵)치료(治療)에 임하고 사망(死亡) (後)에는 호상 반장(護喪返葬)에 참가하여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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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노병희는 전북 고창(高敞) 출신으로서 일찍이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을사조약이 늑결되고 국운이 점차 기울어 가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과 더불어 거의(擧義)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군자금에 충당시킬 목적으로 현금을 준비해 두었다가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1906년 4월 면암이 의진의 거점을 태인(泰仁) 일대로 확정하고 남하할 때 16일에 미리 종성리(宗聖里)에 당도하였다가 최학엽(崔學燁)·고석진(高石鎭)·고제만(高濟萬) 등과 더불어 면암 일행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면암은 일찍부터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으로 일본의 주목을 받아 왔으므로 곧 이들의 의병운동은 관군과 일병의 추격을 받아 끝내 면암과 돈헌 임병찬(遯軒 林炳瓚) 등은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되고 말았다. 본래 면암은 노환의 지병을 갖고 있었으므로 곧 득병하여 자리에 눕게 되었다. 연락을 받은 노병희는 12월에 한의(漢醫)의 자격으로 대마도로 가서 치료에 전력을 다하다 끝내 별세하자 호상(護喪)으로 참가하여 유해를 본국으로 반장(返葬)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194·201·208·730·779·78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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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노병희 자 : 명중(明仲), 호 : 호정(壺亭) 전북 고창(高敞) 중기의병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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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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