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1914년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고 있던 시기에 만주 통화현 이도구(通化縣二道溝)에서 동지들과 함께 동화학교(東華學校)를 설립하여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민족교육의 실시에 힘썼다.
이후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중 1919년 5월경 대동단원(大同團員) 정남용(鄭南用)으로부터 대동단의 결성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단에 가입·활동하였다.
대동단(大同團)은 3·1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동단은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여 황족·유림·종교·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보부상 등 전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는 이건호(李建鎬)의 집에 영동활판소(永同活版所)라는 비밀 인쇄소를 차려 놓고 정남용·권헌복(權憲復)·이근고(李根高)·김용의(金用儀) 등과 함께 대동단의 기관지인 〈대동신보(大同新報)〉를 제작·발행하였으며, 또한 대동단규칙(大同團規則) 등 지하 문서와 각종 선전물을 인쇄·발송하는데 힘썼다.
이후 정남용의 지시를 받고 동지 규합과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기 위하여 〈대동신보〉, 〈대동단규칙〉을 소지하고 부산에 거주하는 구상서(具尙瑞)를 만나 그와 함께 선전물을 배포하는 등 선전활동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활동상황이 일경에 탐지·붙잡혀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3.1운동비사 99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2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3면
- 판결문(1920. 12. 7 경성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