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북 창성(昌城) 사람이다.
일찍이 조국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만주로 건너가서 활약하다가 만주에서 조직된 27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19년 3월 3일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일에 세칭 오적(五賊)·칠적(七賊)이란 이완용(李完用)·송병준(宋秉畯) 등을 암살할 것을 이 탁(李鐸)·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안경식(安景植)·박진태(朴鎭台) 등과 결의하고 결사대의 일원으로 동지들과 함께 서울에 들어왔다.
그러나 무기의 준비가 늦어 인산날인 3월 3일 거사하지 못하고 동월 10일경에야 이 탁(李鐸)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받아 다시 기회를 엿보면서 서울에 체류하였다.
그러던 중 무기 구입비와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동월 31일 밤 차병제(車秉濟)·최병인(崔秉寅)과 함께 서울 효자동(孝子洞) 김수환(金垂煥) 집에 가서 자금을 요청하였으나 현금이 없어 4월 6일 5백원을 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4월 20일 밤에는 서울 인사동(仁寺洞) 한봉취(韓鳳翠) 집에 가서 120원을 모금하였으며 동월 26일 오후 7시 반 경에는 서울 돈의동(敦義洞) 김종근(金宗根) 집에 가서 음력 4월 3일까지 3천원을 조달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등 자금모집에 진력하였다.
이때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에 의해 5월 5일 동지들과 같이 붙잡혀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5·2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