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전남 장흥(長興) 사람이다.
1929년 4월 숙부 박노영(朴魯泳)을 찾아 부산에서 평안환(平安丸)을 타고 상해로 건너갔으며, 이곳에서 강만(江灣)중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4년 봄 중국군관학교 낙양(洛陽)분교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한국혁명군인회에 참가하였다. 1935년 4월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남경(南京)에서 조직된 조선민족 혁명당에 입당하였으며, 특수공작 임무를 띠고 북경·천진 지구로 파견되었다. 북경에서 오광선(吳光鮮)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36년 5월 박태양(朴泰陽)·윤여복(尹汝福)·홍종민(洪鍾民) 등 동지들과 함께 천진(天津)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국으로 압송된 그는 1936년 12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6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66면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50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2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71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3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71 5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