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1년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 5월에는 노령 해삼위(海蔘威)로 가서 조선독립군 의군부를 조직하여 소대장으로 일하였다. 1920년에는 왕청현(汪淸縣) 봉오동(鳳梧洞)에서 있었던 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동년 10월에는 청산리독립전쟁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후 밀산(密山)을 거쳐 노령 이만으로 진주하였다가 러시아군에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알로시게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1924년에는 러시아 신·구당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1925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와 액목현(額穆縣)에서 황학수(黃學秀)·이 탁(李 )·여 준(呂準) 등이 설립한 동아학교(東亞學校)에서 재만한인 교육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1924년 7월 10일 만주의 독립전선에 대한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전만통일의회주비회(全滿統一議會籌備會)가 개최되어 통의부·대한군정서·길림민회·광정단·의성단 등이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가 결성되고 이 탁(李 )·현정경(玄正卿)·이청천(李靑天)·오동진(吳東振) 등이 중앙위원이 되어 정부형태의 행정조직과 거대한 군사조직 및 교육기관까지 구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 국무령에 정의부의 간부이던 이상룡이 선임된 뒤에 조각문제로 내분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925년 삼시협정(三矢協定)의 발효 등 제반문제로 동년말에 중앙의회에서 중앙행정위원의 불신임안을 제기하게 되니,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군민대표회(軍民代表會)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1926년 1월 그는 양세봉·문학빈·정이형·이해룡 등과 함께 서상독립구대표(舒常獨立區代表)로서 군민대표회에 참석하여 정의부의 내분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후에는 중국군에 편입되어 대일전에 참전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8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4권 84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380·38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4·2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