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경술국치 (庚戌國恥) 의 한 (恨) 을 품고 북간도 (北間島) 로 옮긴 부친 (父親) 을 따라 망명 (亡命) 한 후 (後) 화룡현 (和龍縣) 신오평학교 (新奧坪學校) 에서 민족 교육 (民族敎育) 을 받고 1919년 3.1운동에 앞장섰다가 1920년 홍범도 (洪範圖) 장군이 통솔 (統率) 하는 독립군 (獨立軍) 에 참가하고 국내 (國內) 로 진입 (進入) 하여 유격전에서 전공 (戰功) 을 세웠으며 적군과 대회전 (大會戰) 을 예상 (豫想) 한 군대개편 (軍隊改編) 에서 제2중대장 (中隊長) 으로 임명되어 봉오동 전투 (鳳梧洞戰鬪) 에서 전공 (戰功) 을 세운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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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이원 남송(南松) 사람이다.
경술국치의 한을 품고 일찍이 북간도로 옮긴 부친을 따라 망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북간도 용정(龍井) 및 신오평(新奧坪)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0년에는 간도 지방의 청년회에 가입하여 의사부 부원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봄에는 홍범도(洪範圖)를 사령관으로 하는 대한독립군 부대에 참가하여 두만강을 넘나들면서 일제의 기관 파괴 및 일군경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년 6월 6일에는 봉오동(鳳梧洞) 전투의 예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삼둔자(三屯子) 전투에서 일군의 안천(安川) 소좌가 지휘하는 대대병력에 치명적 타격을 준 후 부대를 재정비할 때 최진동(崔振東) 사령관 휘하 제2중대장에 임명되었다. 1920년 7월 7일에는 봉오동전투에 참전하여 상촌(上村)에서 적군 350명을 사상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민족운동년감 83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65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89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0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3권 195·1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