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금산(錦山) 사람이다.
1910년 9월 15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개탄하며 단검으로 할복자결을 기도하였으나 문하 의생(醫生)의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11년 9월 1일 일본정부에 독립촉구선언문(獨立促求宣言文)을, 이어 9월 9일에는 만국공사관(萬國公使館)에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를 발송하였으며 이듬해 10월 또 다시 일본정부에 침략에 대한 항의각서를 발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1913년 1월 9일에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총독에게 일제를 비난하는 문서를 발송하는 한편 납세거부·불입적(不入籍)운동 등을 전개하여 동포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나자 고향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헌병(日憲兵)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귀가하여 이후 고문의 여독으로 발광(發狂)·신음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해파(海坡)양태용 수응록(酬應錄)
- 금산군읍지
- 해동윤강록(海東倫綱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