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남 의령(宜領) 사람이다.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을 지냈다. 1895년 8월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상경하여 당시 참판(參判)이었던 최익현(崔益鉉)과 만나 국권회복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되자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입산(入山)하였으나, 동년 11월 일제는 이른바 은사금을 주어 그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대한의 신하로서 나라가 망하였는데도 죽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고 하고 거부하여 창령(昌寧)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2년 아우 안창제(安昌濟)의 뒤를 이어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守坡公年譜
- 기려수필 202·203·2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