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벽동(碧潼) 사람이다.
1919년 고향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고 동지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 돈화현(敦化縣)으로 망명하였으며, 이후 통의부(統義府) 군사위원장 오동진(吳東振) 휘하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24년 여름에는 동지 김익준(金益俊) 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평북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25년에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자 이에 가담하였다가, 1928년 11월 정의부·신민부·참의부의 3부가 국민부(國民府)로 통합되자 지휘부를 쫓아 국민부 별동대에 소속되었다가 뒤에 다시 조선혁명군에 가담하였다.
동 국민부 별동대는 대장 이진무(李振武)의 지휘아래 평북 일대에서 수년간 활동하였는 바, 차련관(車輦館)주재소 습격, 삼봉(三峯)주재소 습격, 의주의 금융조합 습격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일경과의 교전도 10여차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홍학순(洪學淳)·김태묵(金泰默)·안국형(安國亨)·박인홍(朴仁弘) 등 동지들과 함께 별동대의 국내 진입작전에 참여하였으며, 1932년 1월 만주 안동(安東)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3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0권 393면
- 기려수필 344·345면
- 동아일보(1932. 2. 25, 1933. 6. 23, 6. 27)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2면